지난 7일이 25주기였는데 이제서야 뒤늦게라도 올려본다
그러고보니 태어나기도 떠나기도 모두 3월이었구나
기일은 지나쳤지만 오늘이 음력으로 2월 16일
기형도 시인이 태어난 날이란 걸 이제서야 알았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매일 기형도 시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은 탄생한다
그렇다면 기형도 시인은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니
이별을 추모하는 것도 좋지만 탄생을 기억하는 것도 좋겠다
(...라고 기일을 지나친 한 독자의 변명...)

1960년 3월 13일(음력 2월 16일) ~ 1989년 3월 7일
이사를 다니는 와중에, 대학노트를 다 버렸으나 형도 형의 편지 때문에 이것 하나만은 끌고 다니다가 캐나다에까지 가지고 왔습니다. 얼마 전 기형도 시인 25주기 추모의 밤을 한다는 뉴스와, 광명시에 기형도문학관이 몇년 후 들어선다는 뉴스를 접하고 이 편지를 떠올렸습니다. 사망하기 4년 전 등단하자마자 쓴 육필 편지 내용이 시인을 이해하는 데 작게나마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학관에서 원한다면 당연히 이 노트를 보낼 생각입니다.
광명시, 기형도 문학관 건립
2015년 기형도 문화공원 개장... 2017년 기형도문학관 개관
기형도 25주기 추모제…윤동주와 닮은 영원한 청년시인
"(기)형도는 말이 상당히 빨랐어요. 그러면서도 겹치는 단어가 별로 없었죠. 말투나 표현, 눈빛마저 다양해서 마치 연기자 같았어요. 여학생에게도 인기가 상당히 많았죠."(성석제)
"청록파로 불리던 박두진 시인이 당시 국문과 교수였는데, 형도가 그분에게 시를 보여주고 싶다고 해서 따라간 적이 있어요. 교수님이 제가 쓴 시에 대해서는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 해서 그냥 나왔는데, 그다음이 형도였습니다. 형도에게는 교수님이 아주 오랫동안 진지하고 꼼꼼하게 지적한 것으로 기억해요."(성석제)
성씨는 "유고시집을 묶으면서 '빈집'이라는 시를 처음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성씨는 "그전에 알고 있던 기형도와 그 무렵의 기형도는 전혀 다른 세상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단계 도약한 상태가 아니었나 싶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2015년 기형도 문화공원 개장... 2017년 기형도문학관 개관
처녀작이자 유고작인 '입 속의 검은 잎'은 지난 25년 동안 50쇄를 찍었다. 순수 시집으로는 드물게 26만5000부가 팔렸다.
"(기)형도는 말이 상당히 빨랐어요. 그러면서도 겹치는 단어가 별로 없었죠. 말투나 표현, 눈빛마저 다양해서 마치 연기자 같았어요. 여학생에게도 인기가 상당히 많았죠."(성석제)
"청록파로 불리던 박두진 시인이 당시 국문과 교수였는데, 형도가 그분에게 시를 보여주고 싶다고 해서 따라간 적이 있어요. 교수님이 제가 쓴 시에 대해서는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 해서 그냥 나왔는데, 그다음이 형도였습니다. 형도에게는 교수님이 아주 오랫동안 진지하고 꼼꼼하게 지적한 것으로 기억해요."(성석제)
성씨는 "유고시집을 묶으면서 '빈집'이라는 시를 처음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성씨는 "그전에 알고 있던 기형도와 그 무렵의 기형도는 전혀 다른 세상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단계 도약한 상태가 아니었나 싶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영원한 젊은 시인' 기형도(1960~1989).
그는 유작 시집 '잎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한 권만으로 '기형도 신드롬'을 만들었다.
시집은 1989년 초판을 찍은 이래 지금까지 50쇄 26만5000부가 팔렸다.
99년 10주기에 맞춰 그의 시·산문·소설 등을 한데 모은 '기형도 전집'도 지금까지 24쇄 6만여 부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깊고 투명한 절망과 우울함, 고뇌와 사색이 한국문학의 시혼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7일은 그가 스물아홉의 나이에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난 지 꼬박 스물다섯 해가 되는 날이다.
"눈빛이 사슴 같고 굉장히 선량 해보였고 따스한 미소가 있었어요. 말을 할 때는 말끝을 다소 올리는 습관이 있었죠. 귀염성 있는 말투였어요. 말의 속도가 빨랐어요."(이영준)
"대학생이 쓴 시를 보고 좋은 느낌을 받기 어려운데, 형도는 예외였죠. 시 창작 수업에서, 제 기억으론 '어느 푸른 저녁'이라는 시였는데, 형도가 그 시를 발표했을 때 굉장히 놀랐어요. 대단한 시인이 되겠구나 싶어서 극찬했죠. 이상하게 그 좋은 시를 보는 순간 질투심은 안 들고 감동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이영준)
"대학생이 쓴 시를 보고 좋은 느낌을 받기 어려운데, 형도는 예외였죠. 시 창작 수업에서, 제 기억으론 '어느 푸른 저녁'이라는 시였는데, 형도가 그 시를 발표했을 때 굉장히 놀랐어요. 대단한 시인이 되겠구나 싶어서 극찬했죠. 이상하게 그 좋은 시를 보는 순간 질투심은 안 들고 감동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이영준)
이씨는 "형도는 얼굴이 해사하고 쌍꺼풀에 목소리도 고와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줄 알았는데, 나중에야 어려운 형편에서 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형도의 따사로운 미소, 아름다운 시들 이면에 있는 어둠을 생각하면 '안개'라는 시가 떠오른다. 형도가 거쳐왔던 60~80년대의 시대적 배경과도 잘 어울린다"고 설명했다.
"대학시절 학회가 끝나면 뒤풀이로 술자리를 가졌는데, 형도는 노래를 정말 잘했어요. 나중에 대학 졸업하고 직장생활 하고 나니까 형도의 노래가 얼마나 대단한 경지였던가 알게 됐습니다. 문단 생활 50년 하신 문학평론가 유종호 선생님 말로는 문단 역사상 그렇게 노래 잘하는 사람을 처음 봤다고 했어요."(이영준)
이씨는 "20세기 전반에 윤동주가 있었다면 20세기 후반에는 기형도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면서 "형도의 시에는 산업화와 군부독재 시기를 거치면서 사랑을 받지 못했던 어린이, 청소년, 젊은이의 감성을 가슴 깊이 드러내는 구절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윤동주와 같은 맑은 영혼에 주어진 아픔이 형도의 시에도 들어 있기 때문에 그의 시가 오랫동안 젊은 사람들과 젊은 시인들에게 어필하지 않았나 싶다"면서 "형도는 어쩌면 앞으로도 오래도록 10~20대의 시인으로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출처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detail_book.aspx?pn=140307_munji&start=pbanner
출처
http://moonji.com/8056/




















덧글
저도 추모제를 뒤늦게 알아서 아쉬웠어요
올해가 25주년인 건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알고 있었는데
막상 날짜가 닥치니까 일상 속에 묻혀 잊어버렸네요 ㅠㅜ
엽서세트가 탐나서 이미 갖고 있는 책들이지만 또 지를까 고민 중입니다 ㅋ
특히 '입 속의 검은 잎'은 50쇄라는 의미도 있어서 갖고 싶어요 :)